‘충절의 고장’ 홍성, 민초의 힘으로 쌓아올린 3·1운동사
‘충절의 고장’ 홍성, 민초의 힘으로 쌓아올린 3·1운동사
  • 홍성군
  • 승인 2019.03.07 22: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기고

홍성군은 지산 김복한,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등 항일독립운동의 큰 별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큰 별들의 활동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갈산보통하교 윤석규 학생의 독립선언서 낭독 및 학생만세운동처럼 주민들이 하나로 뜻을 모아 일제에 항거했던 민초들의 힘이 강력한 곳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염원하고 몸 바쳤던 이름 없는 영웅들의 힘으로 쌓아올린 홍성군의 3·1운동 역사를 살펴보자.

1919년 3월 7일 홍성읍내 장터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한 것으로 홍성의 3·1운동이 전개되었다.

▲광천읍 광천장터 3·1운동

1919년 3월 6일 박세화가 전한 독립선언서와 서울 3·1운동의 상황을 들은 광천의 이명종, 박원식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명종과 박원식은 3월 8일 독립선언서를 참고로 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내용의 벽보를 광천장터와 옹암리 2개소에 부착했다. 이후 3월 16일 박원식과 오인섭은 덕명학교를 설립한 일농 서승태를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새로 요약 편집해 필기할 것을 부탁했고, 이를 참고로 독립선언서 510매를 만들어 광천읍내에 배포했다. 3월 21일에는 광천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고, 4월 5일에도 독립만세운동 시도가 있었다.

▲금마면 철마산 독립만세운동

금마면에서는 4월 1일 민영갑, 이재만 등의 주도로 금마면 가산리에 임시로 가설된 연극 공연장에서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는 오후 8시 연극이 공연되는 도중 조한원이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에 관중들이 호응해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경찰이 충동해 다수가 붙잡혀 매를 맞고 이 가운데 20여 명이 재판을 받았다. 이때 체포되지 않은 사람들은 4월 2일 홍성장터에서 다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3차례의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 당시 자주독립을 외치고 봉화를 올린 역사적 장소인 철마산에는 1984년 11월 군비와 면민들의 성금으로 금마기미독립운동기념비를 비롯해 봉화대 복원 및 철마정 등이 건립되었다.

▲장곡면 3·1운동과 항일투쟁

장곡면에는 4월 4일 신풍리 매봉산에서 윤현중·익중·낙중 3형제의 주도로 주민 100여 명이 횃불시위를 전개한 것을 시작으로, 4월 7일 도산리 뒷산에 면민 약 300여 명이 집결, 시위대를 조직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면사무소를 습격, 파괴했으며, 다음날 밤 다시 면사무소를 습격,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에 의해 2명이 부상당하고 20여명이 붙잡혔다. 후에 윤익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윤형중·윤낙중·윤의석·김동하 등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한상철·김동완·김용제·김용숙·김차제 등에게는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장곡면 3·1운동에 참여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94년 8월 장곡3·1운동기념비추진위원회가 주관해 ‘장곡3·1운동기념비’를 건립했다. 2003년 2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1919년 4월 4일 밤 홍동면을 비롯해 홍북·금마·구항면의 24개 마을에서는 일제히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했으며, 이 과정에서 10명이 순국하고 다수가 부상, 많은 시위참가자들이 붙잡혔다.

▲홍동면 만경산 독립만세운동

홍동면에서는 4월 5일 신기리 이제경, 조우식 등이 주도해 면민 대부분이 참여해 만경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때 일경의 무차별 총격에 이희도, 한면도 등이 순국하고 이석만, 안중호는 총알이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으며, 면민 13명이 붙잡혔다. 4월 8일에는 원천리 황윤성의 주도로 각 마을별 만경산, 청광산, 성산, 종현봉, 석삼봉 등 산 위에 봉화를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주재소를 습격했다. 이후 일경에 체포된 황윤성은 태형을 받고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5월 순국했다. 후에 이희도·황윤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되었다.

홍동면 3·1운동을 기리기 위해 1973년 3월 1일 홍동노인회가 성금을 모아 ‘홍동3·1운동기념비’를 건립하고, 1978년 군비로 삼일각을 조성했다. 2003년 7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갈산면 갈산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갈산면에서는 4월 8일 당시 서울에 살던 김필진이 독립선언문을 가져와 당시 갈산보통학교 김복진, 유철규, 김준규, 이동우 등 60여명 학생이 병암산 꾀꼬리봉에 올라가 윤석규 학생이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일경에 체포된 4명 중 유철규는 심한 고문으로 장애를 입었고, 나머지 학생들은 일경의 감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한편 갈산보통학교는 백야 김좌진이 세운 ‘호명학교’의 후신으로, 1917년 갈산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이밖에도 은하면 대천리에서는 3월 21일 면민 대부분이 참여해 만세운동을 전개했고, 장곡리에서는 4월 9일 주민 대부분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경에 9명이 붙잡혀 즉결처분을 받았다. 또 구항면에서도 4월 7일 밤 면민 다수가 월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게양하고 횃불을 올리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