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캘리그라퍼가 붓으로 전하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
장애인 캘리그라퍼가 붓으로 전하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7.10.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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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캘리그라피 이은희 대표>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기반마련 힘쓴 공로 인정

 

캘리그라피 작가이자 장애인창의문화예술연대 ‘잇다’ 이은희 대표가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문화를 통해 성평등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 문화예술인들을 격려하는 ‘2017 올해의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은희 대표가 장애인의 사회적 진출을 돕고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기반마련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이은희 대표는 “지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수상 소식을 들었다”며 “부족한 제게 상이라니 벅참보다 부담감으로 상패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지치지 말라고 주는 응원과 격려로 생각하고 긴 시간 아픔을 함께 한 가족들과 다시 붓을 들고 글씨를 쓸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장애, 세상과 맞설 용기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
22세 꽃다운 나이,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1991년, 22세 꽃다운 나이였던 이 대표는 서예를 전공하는 꿈 많은 미술학도였다. 하지만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에 의한 척수장애 진단을 받게 되며 이 대표의 꿈은 산산조각 나고 삶의 의지조차 잃게 만들었다.

장애인 복지제도가 열악했던 1990년대, 십여차례의 수술과 1년여의 병상생활 끝에 휠체어를 타고 세상에 나오게 된 이 대표에게 삶 자체가 두려움과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무시하는 듯한 주위의 시선과 불편한 생활로 끊임없는 아픔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세상과 당당히 맞서기 위한 용기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대표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맞설 용기와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을 용기 또한 필요하다”며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단단해지다보면 세상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이 대표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1996년 삼육직업재활센터에 입소해 기술교육을 받는가 하면 1999년 홀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무작정 떠났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장애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다양한 정보를 통해 삶의 의지를 북돋게 된 이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사회복지와 재활심리학 공부를 시작해 이후 10년 가량 사회복지사와 복지사회을 이끌어가는 시민모임 간사로 일했다. 충남여성장애인연합에서 일하며 여성장애인 권익보호를 외쳤고 충남도청 내 희망카페 매니저로 발달장애인 직업 생활에 열정을 쏟았다.

아이를 키우며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으로 집안 살림과 엄마 역할까지 해야만 했던 이 대표에게 벅찬 삶이었지만 사랑하는 딸은 그런 엄마를 위해 항상 곁에서 지켜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이 대표는 “여성 장애인 예술가들은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제 몸 하나 가누는 것조차 힘들지만 힘든 여건 속에서 예술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며 “작품을 준비할 때 마다 엄마의 붓을 정리해주고 작품사진을 찍어주고 엄마의 살림까지 기꺼이 도와준 사랑하는 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표가 수많은 좌절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단 하나 절대로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붓이다.

꿈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이 대표는 작은 시골초등학교에서 서예와 수묵화를 가르치고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캘리그라피 공부를 한 후 정식으로 캘리그라피 작가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방과후 수업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며 재능기부에도 앞장섰던 이 대표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세상 앞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이 대표는 “제가 가진 유일한 재능인 글씨 쓰는 일을 시작하면서 쓰임 받는 캘리그라퍼가 되고자 했다”며 “캘리그라피 엽서를 써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너무들 기뻐해 주시는 모습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됐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장애인 예술가 예술활동 제약...작품 발표기회조차 없어
동등하게 문화예술 향유할 수 있는 제도보완 마련 절실

장애인 예술가들은 본인의 몸 하나 가누는 것조차 힘들지만 시간과 체력을 금쪽 같이 쪼개어 예술 활동을 하며 참고 또 참는 연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예술 활동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동에 대한 제약과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장애인들은 문화예술 활동을 머뭇거리게 된다. 상처받아보고 아파봤기에 어쩌면 장애인들에게서 감성적인 내면이 담긴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작품 활동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예술가의 82.2%가 발표기회를 갖지 못했고, 96.5%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수입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의 현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마땅한 창작 공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재 충남도내에는 장애인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향유하기에는 공간 및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애인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예술가와 전문가로 자립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창작활동과 작업 및 전시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다수의 장애인 예술가들이 순수 자비로 활동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장애인들에게 접근성이나 장애를 이해하고 장애유형에 맞게 지도할 수 있는 전문가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장애인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예산이 보다 늘어나고, 정책적인 뒷받침을 위한 조례개정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는데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장애인 예술가들을 위한 서포터즈를 해 줄 수 있는 방안마련이 절실하다”며 “장애인들도 동등한 인간으로서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향유하며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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