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 1급 엄일섭씨가 "코 끝으로 전하는 희망의 멜로디 "
뇌병변장애 1급 엄일섭씨가 "코 끝으로 전하는 희망의 멜로디 "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8.01.31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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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8개월 뇌성마비 판정...수많은 좌절 끝 심금 울리는 연주가로 우뚝서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30일, 내포신도시에는 희망을 전하는 천상의 멜로디가 울려 퍼져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뇌병변장애 1급인 엄일섭(52)씨가 코끝으로 키보드를 연주해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대전에 거주하는 엄일섭 씨가 내포신도시에 오게 된 것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20여년간 지역봉사와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왔던 청로회 이철이 회장을 초청해 부모교육 특강을 개최한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서이다.

이철이 회장의 특강에 앞서 공연장 바닥에 엎드려 오로지 코로만 키보드를 연주한 엄일섭 씨의 공연을 감상한 주민들은 저마다 이구동성으로 감탄사와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생후 8개월 때부터 뇌성마비 증상으로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아온 엄씨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가로 우뚝 선 것은 1993년부터였다.

엄 씨의 어머니는 작은 가게에서 풀빵을 구워 팔며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엄 씨를 업고 동분서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엄 씨의 병은 차도를 보이지 않은 채 세월만 흘러 연로해 진 어머니는 힘에 부쳐 더 이상 엄 씨를 돌볼 수 없게 됐다.

이에 대전의 장애인공동체인 소망의 집에 엄 씨를 머물게 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되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던 엄 씨는 힘든 삶을 부여잡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에 신체 중 유일하게 경련을 일으키지 않는 코 끝으로 키보드 건반을 눌러서 연주를 시작했다.

온 몸이 마비된 채 코로 연주한다는 것은 비장애인들에게도 상상도 할 수 없는 힘겨운 일이기에 수 차례 좌절을 겪으면서도 엄 씨는 희망을 갖고 하루 10시간씩 맹연습을 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비록 서툰 연주솜씨지만 엄 씨의 연주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과 기쁨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보람을 느낀 엄 씨는 교회와 각종 행사 등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곳이면 먼길도 마다않고 어디든 달려가 연주를 했다. 1996년과 1999년에는 캐나다 공연을 다녀왔고 2003년 겨울에는 미국을 순회하며 100여 곳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또한 KBS, MBC, SBS 등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일명 코보드 연주자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의 도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003년 중입 검정고시에서 대전지역 수석을 차지한 데 이어 중등반으로 올라가 2004년에는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6년에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2007년부터 2년간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이수한 결과 2급 사회복지사가 됐다.

엄 씨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키보드 연주를 하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하루하루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며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서 행복하게 웃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어눌한 말투지만 밝은 미소와 함께 전했다.

엄일섭 씨가 이철이 회장과의 인연이 맺어지게 된 것은 30년전 대전 고아원을 방문했다 우연히 들르게 된 장애인공동체에서 만나게 되면서 부터다. 당시 8명의 장애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곳에서 엄 씨가 키보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철이 회장은 감동에 눈시울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이철이 회장은 엄 씨와의 30여년간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오고 있으며 청로회 고등부 학생들은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엄 씨의 낡은 키보드를 새로 구입해 장만해 주기도 했다.

이철이 회장은 “엄일섭씨는 현재 수급자로 지원을 받아 생활하면서 요즘엔 공연요청이 줄어들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수입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관심과 사랑으로 찾아줄 때 좀 더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 자체에 대한 감사보다는 늘 불평불만을 갖고 산다. 하루하루 통상적으로 보내는 삶속에 누군가에게는 하루라는 시간이 간절함으로 너무도 큰 감사함과 희망이 된다는 것을 되새기며 반성하는 삶을 살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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