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선수에서 어부가 된 청년, 거친풍랑과 맞서다
씨름선수에서 어부가 된 청년, 거친풍랑과 맞서다
  • 이은주 기자
  • 승인 2021.04.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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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지역을 택하다-6】 동진호 홍명완 선장 “수많은 좌절속 가족을 위한 집념이 성공비결”
뱃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던 20세의 홍 선장은 허드렛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노동강도가 큰데 비해 수익이 적은 뱃일을 견디기가 힘들었지만 홍 선장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되뇌이며 버텨냈다.
뱃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던 20세의 홍 선장은 허드렛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노동강도가 큰데 비해 수익이 적은 뱃일을 견디기가 힘들었지만 홍 선장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되뇌이며 버텨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며 씨름선수로 성공을 꿈꿨던 청년이 어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이다.

홍명완(39)선장은 광천에서 태어나 덕명초등학교와 광흥중학교, 홍성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모래판에서 떠날 줄 모르는 씨름선수였다.

광천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조부모님과 부모님 덕에 부족한 것 없이 자랐던 홍 선장은 IMF로 인한 부친의 사업실패에 이어 부모님의 이혼으로 한 순간에 너무도 큰 좌절을 겪어야 했다.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홍 선장의 굳은 의지는 결국 샅바를 놓고 바다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뱃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던 20세의 홍 선장은 허드렛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노동강도가 큰데 비해 수익이 적은 뱃일을 견디기가 힘들었지만 홍 선장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되뇌이며 버텨냈다.

이후 2009년, 빚을 내 멸치잡이 배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홍 선장은 고되고 위험천만한 뱃일을 하며 또다시 수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조업도중 선원 두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홍 선장은 우울증과 자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홍 선장은 “가족과도 같은 좋은 분들을 잃었다는 자책감에 심리적으로 너무도 힘든 순간이었다.”고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좌절만 하기에는 남겨진 선원들과 가족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는 굳은 의지가 결국 그를 다시 바다에 뛰어들게 했으며 그렇게 거친 풍랑과 맞서기를 13년을 이어온 결과,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고 총 7척(홍 선장 4척, 동생 홍성훈씨 3척)의 멸치잡이 어선과 보령시 오천면의 1200여평 부지에 3동의 건물을 마련해 어획한 멸치를 건조, 선별, 포장 등 전처리가 가능한 멸치공장 다정수산을 운영하게 됐다.

이와 함께 광천에 유통제품 제작을 위해 동아 F&B를 설립해 멸치를 우려낸 육수를 농축해 만든 멸치육수팩과 반건조 멸치, 김 등을 네이버 스토어팜 ‘홍 선장의 바다담아’ 사이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4년 전부터 미국과 일본 등에 연 5톤~10톤이상 수출을 하고 있으며 한국식 김을 바베큐화 해서 외국인들이 접하기 좋은 스낵타입으로 개발 중이다.

또한, 궁리어촌계 등 지역의 어업인들이 어획한 수산물의 유통을 위한 판로를 개척해주고 있다.

홍 선장은 “경매가로는 어업인들이 만족스런 가격을 받을 수가 없다. 어업인들이 원하는 가격을 맞춰주고 대신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우수한 품질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결국, 생산자는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품질 좋은 수산물을 밥상에 올릴 수 있는 선순환체계가 구축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생인 홍성훈씨 역시 방송국 PD를 그만두고 형과 함께 가업을 잇기 위해 요리연구가인 아내 홍성란씨와 함께 귀향한 귀어청년이다.

귀어한지 5년차인 홍성훈씨는 “도시에 살면서 시골에 대한 그리움과 언젠가는 귀향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았다.”며 “어차피 시골에 내려와 살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정착하는 것이 좋을 듯해 아내와 함께 내려와 살면서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의 성공궤도에 오른 홍 선장이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역시나 가족이 함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홍 선장은 “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함께 살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며 “가정을 이뤄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보니 좋은 집과 좋은 차보다 내손으로 일궈낸 노력의 결과로 가족이 함께 한 공간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홍 선장은 지역 내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성금기탁과 어르신들 사랑방에 멸치를 제공하는 등 힘들게 벌었지만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지역사회 환원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또한, 네이버 스토어팜에서 거창한 국수와 함께 칼국수 밀키트 판매 수익금 전액을 광천 사랑육아원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렇듯 이제는 순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은 홍 선장에게 어쩌면 뱃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고충이 있다.

어느 정도의 성공궤도에 오른 홍 선장이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역시나 가족이 함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홍 선장은 “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함께 살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며 “가정을 이뤄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보니 좋은 집과 좋은 차보다 내손으로 일궈낸 노력의 결과로 가족이 함께 한 공간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어느 정도의 성공궤도에 오른 홍 선장이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역시나 가족이 함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홍 선장은 “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함께 살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며 “가정을 이뤄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보니 좋은 집과 좋은 차보다 내손으로 일궈낸 노력의 결과로 가족이 함께 한 공간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2014년 수산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서해의 멸치잡이 어업인들이 7월 한달간 세목망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목망을 사용하면 다양한 어종의 어린물고기가 잡혀 어족자원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정작 멸치잡이가 한창이어야 할 7월에 멸치잡이용 세목망(모기장 그물)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사실상 어획량이 줄고 고품질 멸치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홍 선장은 “현장위주의 정책이 아닌 정작 현장에 나와 보지도 않은 채 탁상행정으로 정책이 만들어진다.”며 “멸치 산란기인 4월~6월까지 알배기 멸치는 마음대로 잡게 하고 고품질 멸치가 잡히는 7월 성어기에는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어민도 죽이고 멸치 어족자원도 고갈시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어업환경을 위해 바다에 나가서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줘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다.“며 ”충남연안선망협회가 15년을 요구하고 있지만 묵살되고 있다. 이제는 어획량이 줄어 수익을 못내 어업인들이 하나둘 배를 팔고 떠나고 있다. 자칫 먹거리 단절로 이어져 결국 어업인과 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홍 선장은 이런 상황에서 귀어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적극 독려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홍 선장은 “시니어 어업인과 젊은 어업인이 멘토·멘티되어 후계자 양성을 통한 지속가능한 어업이 되어야 하는데 현장정책이 반영되지 않아 수익성이 없는 상황에서 적극 권할 수가 없다.”며 “열심히 땀 흘리면 수익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으로도 30년이상 뱃일을 하고 싶다는 홍 선장은 가족을 위해, 또한 고품질의 멸치를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게 하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거친풍랑과 맞서고 있다. 

홍 선장의 동진호가 드넓은 바다를 가르며 오늘도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홍 선장의 동진호가 드넓은 바다를 가르며 오늘도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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